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페인-콜롬비아 관계 (문단 편집) === 현대 이전 === [[대항해시대]]부터 [[그란 콜롬비아]] 독립 이전까지의 콜롬비아 지역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콜롬비아 일대는 누에바그라나다 부왕령이었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천주교]]도 전파되었고 [[스페인어]]도 보급되었다. 스페인 제국의 지배하에서 [[스페인인]]들이 이주했다. 콜롬비아 지역도 중남미 지역의 다른 스페인어권과 마찬가지로 [[메스티소]]가 생겨났다. 스페인 제국은 1533년 물산집산지 [[카르타헤나(콜롬비아)|카르타헤나]]를 건설하였다. 도시 이름은 기원전 [[고대 카르타고]]인들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에 세운 무역 도시 카르타고 노바([[카르타헤나(스페인)]])의 이름에서 따왔다. 카르타헤나는 누에바그라나다 식민지의 중심지로 기능하며 번영을 누렸다. 누에바그라나다에서 생산된 물산은 [[카르타헤나]]를 거쳐 이베리아 반도의 주요 항구도시 [[세비야]]로 운반되었고 스페인의 국고를 살찌웠다. 스페인 제국에서는 카르타헤나를 중심으로 누에바그라나다 각지에 관료와 군인들을 파견하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콜롬비아 일대는 특이하게도 바스크인 이민자가 많았다고 한다. 1640년대부터 1859년까지는 바스크계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정도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바스크인들 중에 숙련된 선원이 많았고 당시 카르타헤나가 해상 운송의 중심지였던 것과도 관계가 깊다. 스페인인들의 정복 직후 원주민들은 유럽발 전염병에 취약했던 이유로 또 스페인인들의 학대로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였고, 결국 콜롬비아 일대의 [[플랜테이션]] 운영을 위해 스페인 제국은 서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을 이주시켰다. 콜롬비아는 브라질 만큼은 아니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스페인어권 국가들에 비하면 흑인 노예 유입이 더 많은 편이었다. 이렇게 유입된 흑인 인구로 콜롬비아의 인구 구성은 좀 더 복잡해졌다. 당시 흑인 노예들의 언어와 스페인어가 섞이면서 [[팔렝케로어]]라는 크레올도 생겨났다. 물론 카르타헤나만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스페인 중부 건조지대에 해당하던 [[카스티야]] 지방은 주로 농업보다는 목축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카스티야 출신 군인들은 콜롬비아 동부에서 베네수엘라 서부에 이르는 초원 지대에서 말을 타고 다니며 소와 양을 치는 목축 기술을 전파하였다. 스페인 군인과 흑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물라토]]들은 가축 사육을 전업으로 하면서 숙련된 기수로 유명해지는데 이들은 [[야네로]]라고 불렸으며, 후에 콜롬비아 독립 전쟁에서 시몬 볼리바르 측에 합세하며 우수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맹활약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중남미 지역의 대부분은 스페인의 지배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생겼다. 물론, [[스페인군]]은 군대를 파견해서 중남미 지역의 독립 움직임을 탄압하고 억압했다. 당시, 베네수엘라 지역은 [[시몬 볼리바르]]가 이끄는 독립군이 스페인군과 전투를 벌였다. 콜롬비아 지역에서도 스페인군과 독립군간의 전투가 있었다. 훗날,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와 함께 대 콜롬비아 공화국이란 이름으로 스페인에서 독립했다. 대 콜롬비아 공화국은 시몬 볼리바르의 사후,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로 각각 나뉘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